[목활자본과 금속활자본에 대한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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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9-22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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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으로 元나라의 왕정(王禎)이 1298년에 목활자 3만여개를 만들어 자신이 편찬한「정덕현지(旌德縣志)」를 인쇄하였다는 기록이 있따 그는 또 <造活字印書法>을 지어 자신의 저서인「農書」의 권말에 붙였다. 활자인쇄는 한 벌의 활자를 만들어 놓기만 하면 이를 오래 간직하면서 필요한 책을 수시로 손쉽게 찍어낼 수 있기 때문에 인쇄비용이 덜 들고 일하는 시간이 단축되어 경제적이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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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활자본과 금속활자본에 대한 개관]
옛 책의 인쇄는 목판인쇄에서 비롯하였다. 그 예로서 1395년(태조 4년) 書籍院이 白州知事 서찬(徐贊)이 만든 목활자로「大明律直解」를 찍어 형률의 적용에 참고하였고, 1397년 功臣都鑑이 목활자를 만들어「원종공신녹권(願從功臣錄券)」을 찍어 공신들에게 반사해준 것을 들 수 있따 그 중 심지백(沈之伯)에게 내린 것이 오늘에 전하여 국보 제69호로 지정되어 있따 목활자의 인쇄술이 정교하게 발전하기 처음 한 것은 세종때부터였다. 그 중에 목활자의 제작, 조판 및 인출법에 관한 것이 구체적으로 기술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동양에 있어서 후대에 이르기까지 목활자 보급 및 발달에 크게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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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목활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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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목활자의 기원과 발달
이 글에서는 목활자본과 금속활자본에 대해 개괄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나무로 활자를 만들면 나뭇결에 조밀의 차가 있어 물에 젖었을 때 높고 낮음의 차이가 생겨 활자면이 고르지 않고, 또 조판할 때 점착성물질과 서로 고착되어 떼어내기 어렵기 때문에 흙으로 빚어 구운 활자를 사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조선초기는 왕조교체의 혼란상태에서 경제질서가 아직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에 긴요한 reference(자료)를 손쉽게 찍어내기 위하여 목활자를 만들어 사용하였다.[목활자본과 금속활자본에 대한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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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활자본과 금속활자본에 대한 개관]
[목활자본과 금속활자본에 대한 개관]
우리 나라에서는 언제부터 목활자를 사용하여 책을 찍었는지 전하는 기록과 초기의 활자본이 전해지고 있지 않아 자세히 알 수 없으나 고려 말기 1377년(우왕 3년)에 흥덕사에서 주자(鑄字)로 찍어낸「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을 보면 목활자가 혼용되고 있으니 그 이전에 목활자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1448년에 간행, 반포한「동국정운」의 한글과 한자 큰 자는 목활자로 찍어냈는데, 그 새김이 정교하여 그 중 한자활자는 진양대군의 필적을 잘 나타내주고 있따 그리고 墨蓋子의 율문은 안평대군의 글씨체를 잘 나타내준다.
[목활자본과 금속활자본에 대한 개관]
설명
목활자는 나무로 만든 활자를 뜻한다. 목활자에 관한 초기의 기록은 북송 심괄의 저서「몽계필담(夢溪筆談)」에서 慶曆年間에 畢昇이 만든 교니활자(膠泥活字)의 說明(설명) 가운데 나타난다. 그 결과 새로 궁리해낸 것이 활자 인쇄였다. 게다가 책판은 대개 수량이 많고, 부피가 크며, 무겁기 때문에 보관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잘못 간수하면 썩거나 닳고, 터지고 빠개져서 못쓰게 되는 것이 큰 문제였다. 그러나 목판인쇄는 비용과 시간이 무척 많이 들면서도 그 책판에서는 오직 한 종류의 책만을 찍을 수 있는 것이 큰 결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