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균여전을 통해 살펴본 향가의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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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6-30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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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一首之鄕歌 詞淸句麗 其爲作也 號稱詞腦 可欺貞觀之詞 精若賦頭 堪比惠明之賦 而唐人見處 於序外以難詳 鄕士聞時...........’이 기록에서는 균여의 <普賢十願歌>를 향가라 하며 그 노래는 중국(中國)의 詞․賦를 능가할 만하고, 중국(中國)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웠으나 우리는 이해하기 쉬운 노래다. 향가에 대한 명칭부터 확실하게
삼국유사, 균여전을 통해 살펴본 향가의 성격
2. 기록을 통해본 향가의 성격
삼국유사, 균여전을 통해 살펴본 향가의 성격
다. 향가는 그만큼 널리 불리고 국민적인 호응을 받았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王素與角干魏弘通 至是常入內用事 仍命與大矩和尙 修集鄕歌 謂之三代目云’ 이라 하여 , 향가는 왕실에서도 요점의 당위성을 느껴서 『三代目』이란 향가집을 편찬케하였다. 다른 문헌으로는 김부식이 지은『三國史記』(1145)의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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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포트 > 인문,어학계열
위에서 살펴본 향가의 기록에서도 성격에 대한 부분이 언급되었다. 삼국유사, 균여전을 통해 살펴본 향가의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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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이상의 기록들을 보면 ‘鄕歌(향가)’란 명칭이 문헌상에 쓰인것이 11세기경부터였으니 , 그 origin가 매우 오래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현재에도 향가라는 명칭에 상대하여 그 opinion이 분분하며, 명칭문제 이외에도 많은 학술적 문제를 지니고 있는 것이 향가이다. 향가는 신라인들이 오랫동안 숭상해 왔고 신령한 감동력을 주는 것 이많았으며, 특히 향가를 잘 짓는 사람이 있었다는 설명(explanation)으로 받아 들일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노래는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 전파되고 또 담벽에 쓰이어 읽히기도 했으며, 三句六名의 형식인데 향찰(鄕札)로 표기되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따라서 좀더 구체적으로 한국문학사에서 의미라는 명칭은 ‘향찰(鄕札)이라는 특수문자로 표기된 신라시대의 시가로, 『三國遺事』의 14수와 『均如傳』의 11수 합하여 25수(또는 ’도이장가‘를 포함하여 26수)를 가리키는 용어’ 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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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가(鄕歌)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먼저 ‘鄕歌’라는 용어가 나타나고 있는 문헌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明奏云 臣僧但屬於國仙之徒 只解鄕歌 不閑聲梵 王曰 旣卜緣僧雖用鄕歌可也 命乃作兜率歌賦之. 羅人尙鄕歌者尙矣 蓋詩訟之類歟 故往往能感動 天地鬼神者非一’라 하여 국선에 속한 승려는 범칭에 익숙하지 못하지만 향가는 지을줄 알고, 이 노래는 불제에서 쓰였다. 처음으로 鄕歌라는 용어가 보이는 문헌은 『均如傳』(1075)이다. 또한 향가라는 명칭이 뜻하는 것은 중국(中國)의 시가(詩歌)와 범패(梵唄)에 대한 ‘우리 고유의 노래’란 의미인데, 이렇게 규정하면 그 범위가 매우 넓고 포괄적인 槪念이 된다. 마지막으로 『三國遺事』(1285)의 기록이다.